top of page

주얼리 메카, 종로

image-removebg-preview (83).png

현재 종로에는 3,309개의 주얼리 사업체가 있으며 이는 전국 21%, 서울의 50%에 해당합니다. 특히, 원자재, 제조부터 도gs소매, 감정까 주얼리 산업의 모든 분야가 종로에 집적되어 있어, 가히 ‘주얼리 산업의 중심지’라 불릴 만합니다.

 

종로에는 왕실 공예품을 제작하던 경공방이 북촌 일대에 밀집하여 있었고, 대한제국에 들어서는 한성미술품제작소 등이 그 맥을 이었습니다. 1970년대 대량생산 시스템이 종로로 유입되면서 주얼리 도매 집적지로 성장하였고, 1990년대부터는 대로변 중심으로 소매 타운이 형성되며 종로3gs4가 일대가 소비자들에게 주얼리 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지 되었습니다

 

 

Jongno is currently home to some 3,309 jewelry businesses, accounting for 50 percent of those based in Seoul and 21 percent of those across the country. The neighborhood is a hub for all aspects of the industry, from raw materials and wholesale/retail to gemology. It truly is the beating heart of the Korean jewelry industry.

The workshops that crafted pieces for the royal family were concentrated in the Bukchon area of Jongno, and succeeded by Hanseong Craftwork Manufactory during the Korean Empire. Mass production systems were introduced to Jongno in the 1970s, turning the area into a hub for jewelry wholesale. From the 1990s onward, a jewelry retail town formed as retail stores began to line the area’s main streets. Since then, the Jongno 3-ga and 4-ga areas became ingrained in the minds of Korean consumers as the center of Korea’s jewelry industry.

주얼리산업 100년사

새벽의 사원

태동기 Birth

(1883-1919)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1910년대까지를 포함하는 시대로, 주얼리 산업은 주로 왕실 또는 황실에 납품하는 어용품 생산 위주로 발달하였다. 전통 금은기류와 장신구를 제작한 대표적인 세공소로는 황토현(현재 광화문 빌딩 위치)에 한성미술품제작소가 있으며, 금gs은방이라고 일컫는 금은세공소 또한 종로 대부분 위치하였다.

 

 

From the late Joseon Dynasty to the 1910s, the Korean jewelry industry primarily produced pieces for the royal or imperial court.

1883

개항(1876년) 이후, 시계 보석류 25~30% 관세 시행

1908

한성미술품제작소 설립 (왕실 및 민간에 주얼리 등 납품)

1913

서울 소재 금은세공소 약 150여 업체 성업

1918

금은세공 품평회 개최

여명기 Dawn

(1920-1959)

1920년대에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신여성이 등장하고 서양식 장신구가 유통되었으나 1930년대 전시체제를 강화하며 백금과 금 사용을 억제하였고, 1950년 6gs25 전쟁이 발발하며 장신구의 수입, 제조 판매, 착용을 금지하였다. 휴전 이후부터는 귀금속 상점과 백화점이 적극적으로 신문 광고를 게재하는 등 판촉에 힘썼다.

 

 

The 1920s saw an influx of Western-style accessories with Western cultural influences. However, the jewelry industry was restricted due to a series of wars.

1920

영친왕 가례에 다이아몬드 반지, 팔찌, 화관 예물

1939

금 생산 31톤 세계 6위, 세계 생산량 4%

1940

보석 및 귀금속 매매 금지령

1950

14K 이상 귀금속 착용, 판매, 수입 금지

yeoja-boseogsang-eun-jibgelo-ttaemnab-jogag-eul-jallanaebnida.jpg

도입기 Introduction

(1960-1975)

이 시기의 주얼리 산업은 수요자 위주의 핸드메이드 생산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정부는 귀금속gs보석 제품을 사치품으로 분류하여 억제 정책을 펼쳤으며, 보석에 대한 물품세율은 1960년 10%에서 1974년 무려 200%까지 치솟아 다수의 귀금속 상점이 휴업과 폐업에 처했다.

 

 

During this period, the jewelry industry focused on handmade, custom pieces for individual customers.

1971

한국 귀금속 세공인의 일본 진출 시작

1975

수출 특화 산업으로 귀금속 집단 육성 정책 시행

boseog-ui-sseulmo-eobsneun-bubun-eul-beosgigi.jpg

발전기 Development

(1976~1985)

1976년 정부 지원으로 이리귀금속보석가공공단 (현재의 익산)이 조성되며, 주얼리 산업은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되었다. 1977년 7월 1일 특별소비세 및 부가가치세 도입으로 귀금속의 환금성이 떨어져 거래가 마비되자, 같은 해 11월 7일 중고 귀금속에 한하여 특별소비세가 면제되었다.

 

 

The jewelry industry adopted mass production in 1976 with government funding.

1976

정부 지원 이리귀금속보석가공단지 입주

1985

한국 귀금속 세공인 일본 체류 5,000여 명

jang-gab-eul-kkigo-gogeub-boseog-gage-ui-syokeiseueseo-dogjeom-banjileul-gajyeogabnida.jpg

호황기 Heyday

(1986~2005)

주얼리의 대중화로 시장이 크게 확대되며 산업은 최대 호황기를 맞이했다. 소비의 시대로 전환되며 주얼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개선되었고, 1991년 보석수입자유화 정책으로 주얼리 산업이 양성화되기 시작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예물시장의 비중이 점차 줄어 패션주얼리 위주로 성장했다.

 

 

Jewelry’s increased accessibility multiplied the market and lead to a boom in the industry.

1987

귀금속가공상품품질표시 규정 개정 및 강화

1990

보석 수입 자유화

1993

귀금속상 신고제로 전환

1998

IMF 금모으기운동 227톤 수집, 350만명 동참, 수출 21억3천만불

실버 주얼리 디스플레이

전환기 Transition

(2006~현재)

수출과 내수의 불황이 장기화되며 제조 시장이 위축되었고, 국내 시장은 해외 수입 브랜드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따라 윤리 의식, 환경 보호 등의 가치가 브랜딩으로 이어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같이 신소재 합성 보석 시장이 개척되었다.

 

 

Changing consumption trends have influenced jewelry branding, opening a market for new materials and synthetic gems.

2010

종로 귀금속 특정개발진흥지구 지정

2019

보석 및 주얼리에 대한 관세 및 개별소비세 개정

2021

종로구 귀금속보석산업지원 조례 제정

2023

서울시 귀금속보석산업지원 조례 제정

bottom of page